[스파이의 세계] (2)북한 공작원의 마지막 임무 성공 및 실패사례
민진규 대기자
2018-10-01 오전 10:00:16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1차 남북 정상회담, 5월 판문점에서 2차 남북 정상회담,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9월 평양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 등이 개최되면서 한반도에 평화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일부 국민들은 머지 않은 장래에 한반도가 통일이 될 것이라는 희망도 품고 있다. 올해 안에 4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북한이 미국과 합의해 모든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모두 파괴한다고 결정하지 않는 이상 한반도의 평화는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다.

남북 관계의 대립과 갈등은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한반도에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시작됐다. 북한은 대남통일을 명분으로 간첩을 남한으로 파견하는 공작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6∙25남침으로 남한정복이 실패한 이후 대남 공작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됐다. 공작을 위해서는 남한으로 공작원을 파견해야 하고, 공작에 실패하거나 성공한 공작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북한 공작원의 마지막 임무 성공 및 실패사례를 살펴보자. 

◈ 북한 공작원도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사례도 많아

북한의 수 많은 공작 중에서 마지막 임무와 관련된 대표적인 3가지 사례는 1968년 1월 청와대 기습사건, 1987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 1997년 최정남과 강연정 부부간첩사건 등이 있다.

첫째, 1968년 1월 발생한 청와대 기습사건은 북한 정찰소속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한 사건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를 암살하기 위해 파견됐다. 이들은 육로를 통해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했지만 발각돼 사살됐다.

31명 중 1명은 사살되거나 자살하지 않고 체포됐는데, 이 사람의 이름은 김신조였다. 그의 이름을 붙여 청와대 기습사건을 ‘김신조 사건’이라고 부른다. 김신조는 군경과의 교전 속에서 자살을 선택하지 않고 체포됐다.

남한 당국은 체포한 김신조를 통해 북한의 특수부대 실태, 남한 침투경로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청와대 기습사건이 북한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정권이 저지른 준군사공작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는 증거가 됐다.

둘째, 1987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은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여객기를 동남아시아 상공에서 폭파시켜 승객과 승무원 155명이 사망했다. 북한 노동당 35호실 소속인 김현희와 김승일이 일본인으로 위장해 비행기에 폭탄을 탑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중간 기항지인 아무다비국제공항에서 내렸지만 곧바로 체포됐다. 체포 후 청산가리 앰플을 깨물어 자살을 시도했지만 김승일은 사망했고, 김현희는 자살에 실패했다.

이후 김현희는 한국으로 압송돼 조사를 받았고 자신이 일본인으로 위장한 북한의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한국 정부는 청산가리 앰플로 자살하는 것이 북한의 수법이라는 주장을 펼쳐 일본으로 송환될뻔한 김현희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었다.

김현희는 한국에서 사형판결을 받았지만 사면을 받았다. 안기부의 보호를 받으면서 북한의 대남공작에 관련된 많은 정보를 공개했다. 1991년에는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 1992년 ‘사랑을 느낄 때면 눈물을 흘립니다’라는 자전적 수필집을 출간했다.

셋째, 1997년 최정남 및 강연정 부부간첩사건은 노동당 35호실 소속으로 경북대 김순권 교수가 개발한 우량 옥수수 종자를 입수하라는 등의 임무를 부여 받고 남한으로 파견됐다. 김순권 교수는 아프리카의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량 옥수수를 개발한 국제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최정남과 강연정은 1997년 10월 27일 울산 코리아나호텔 커피숍에서 체포됐다. 체포된 부인 강연정은 수사 도중 독약 캡슐을 물고 자살했다. 남편인 최정남은 자살하지 않았고, 북한이 자신에게 내린 지령을 공개함으로써 한국에 구축한 지하당인 민주민족혁명당이 발각되는데 기여했다.

최정남과 강연정 부부간첩사건은 1999년 상영된 ‘간첩 리철진’이라는 영화에 모티브를 제공했다. 훈련을 받았지만 남한 말투에 익숙하지 않고, 남한의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간첩의 모습을 담았다.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남한에서 개발한 슈퍼 돼지를 훔쳐서 북한으로 돌아오라는 임무를 띠고 파견된 공작원의 스토리이다. 김순권 교수의 우량 옥수수 종자를 슈퍼 돼지로 바꿔서 스토리를 전개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에서 제시한 3가지 사례를 보면 공작원이 마지막 임무를 100% 완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청와대를 기습한 정찰총국 특수부대원인 김신조도 생포됐고, 1987년 대한항공 폭파사건과 1997년 부부간첩 사건에서는 공작원 2명 중 각 1명씩만 자신을 제거할 수 있었다. 

◈ 인질에 대한 책임과 고문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지막 임무 선택

남북 정상회담과는 상관없이 오늘도 북한과 남한은 치열하게 체제대결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북한이 남한 체제를 교란하거나 붕괴시키기 위해서 공작원은 파견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북한이 공작원을 남한으로 파견하면서 철저한 사상교육을 시킬 것은 당연하고, 북한에 가족을 인질로 잡아 변절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라고 본다. 역사 이래 스파이를 파견하는 국가는 스파이의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해 모두 동일한 방식을 사용한다.

스파이가 자신에게 부여된 마지막 임무를 수행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체포되면 어차피 죽을 것이라는 체념, 고국에 두고 온 인질에 대한 책임, 고문에 대한 두려움 등이라고 볼 수 있다.

스파이를 체포하면 비밀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대부분 끔직한 고문을 가하게 된다. 고도로 훈련된 스파이가 순순히 자백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강력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게 된다.

고문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고문 도중에 자살을 시도하는 것도 고통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만 고문이 지독한 것이 아니고 민주주의 국가도 적의 스파이에게는 관대하지 않다.

미국이 2001년 9∙11테러 사건 이후 체포한 알카에다 조직원과 조직원으로 의심되는 용의자에 가한 고문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고문을 금지한 미국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위해 미국 CIA는 쿠바 콴타나모 해병대 기지, 공해상에서 작전 중인 미국 군함, 동유럽에 위치한 비밀감옥 등에서 잔인한 고문을 시도했다.

고국에 두고 온 인질은 자식, 배우자, 부모, 친인척 등으로 다양하다. 스파이는 자신이 배신할 경우에 이들이 당할 고통을 익히 잘 알고 있다. 비밀공작에 성공할 때 주어질 상에 버금가는 처벌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공작원이 자신을 제거하는 마지막 임무를 부여 받고 실행하는 것은 아니다. 임무를 완수하고 안전하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확신이 들 때에만 선택하는 임무이다. 아무리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도 죽을 것이 명백한 임무를 기꺼이 맡을 공작원은 많지 않다.

- 계 속 -

 


▲김현희의 책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좌), 영화 ‘간첩 리철진’(우)(출처 : 인터넷)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 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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