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신문] '국정원 너 지금 어디야'라는 도발적인 문구를 보며 든 단상
민진규 대기자
2021-05-21 오후 12:06:43
며칠 전 서울지하철 4호선 동작역 구내에서 재미있는 포스터를 목격했다. 4호선과 9호선이 환승하는 한적한 통로의 벽면에 부착된 '국정원 너 지금 어디야'라는 도발적인 문구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지난 30여년 동안 국가정보기관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눈길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실제 포스터 내용은 문구와 달리 2021년 5월 14일부터 5월 20일까지 '서울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기 위해 최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단어를 찾은 결과라고 보인다. 입에 올리기조차 어렵던 국가정보원이라는 명칭이 포스터에 등장한 것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1961년 설립된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두말할 나위 없이 한국의 최고 정보기관이다. 국정원은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김대중 정부에서 현재의 명칭을 얻었다.

2017년 시민들의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의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개칭한다고 추진하다가 중단했다. 국정원법 개정으로 조직의 임무를 조정하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미국 CIA의 도움을 받아 창설된 이후 지난 70년 동안 영욕의 세월을 보냈다. 18년 동안 이어진 박정희 정권을 붕괴시킨 10·26사태를 일으킨 김재규는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이후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정권은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로 위상을 격하시켰다. 국가안전기획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과 노동자를 탄압해 군사독재를 유지하는 선봉대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민정부 시대를 연 김영삼 정부에 들어서도 국가안전기획부의 일탈행위는 멈추지 않았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국가안전기획보를 국가정보원으로 개칭하면서 대대적인 쇄신을 추진했다.

하지만 진보 정부인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이후 이어진 보수 정부에서 국정원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정치사찰과 사이버 여론전은 조직의 명예를 더욱 실추시켰다.

이제 국내정보 수집을 중지하고 대공수사권도 2023년까지 경찰청에 이관하면서 국내 정치에 개입할 여지는 많이 해소됐다고 볼 수 있다.

북한를 포함한 해외정보, 국내보안 및 방첩정보를 효과적으로 수집할 시스템을 어떻게 갖출 수 있을지 평가하기는 이르다. 국정원 직원들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국가안보의 전위대가 될 것으로 믿는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 홍보 포스터(출처 : i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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